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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팬데믹, 항생제 내성

항생제 내성은 국제 보건의 심각한 위협 중 하나다. 항생제 내성 실험 모습
출처: DFID – UK Department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1928년 페니실린의 발견은 세균에 대한 인간의 승리의 시발점이었다. 다양한 항생제가 잇따라 개발되며 인류의 기대 수명까지 늘린 항생제 황금기는 인류가 세균을 상대로 승리를 확신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 세균의 역습에 인류의 건강은 조용히 침식 중이다. 항생제에 내성을 보이는 세균인 내성균이 등장하면서 기존 치료제가 듣지 않는 항생제 내성(AMR, Antimicrobial Resistance)이 번지고 있다.

2024년 <The Lancet>에 게재된 분석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세균성 항생제 내성 직접 사망자 수를 약 114만 명, 관련 사망을 약 471만 명으로 추정했으며, 현재 추세가 지속되면 2050년에는 직접 사망자 수가 약 191만 명, 관련 사망이 약 822만 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79차 세계보건총회(WHA79)
출처 : WHO X(구 트위터)
 

항생제 내성이 전 세계적 대응이 시급한 의제라는 점은 올해 5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79차 세계보건총회(WHA79)에서도 드러났다. 회원국들은 향후 10년간의 대응 방향을 담은 「글로벌 항미생물제 내성 행동계획 2026–2036 개정안」을 채택하고, 2030년까지 항생제 내성 관련 인간 사망을 10% 줄이겠다는 목표를 재확인했다. 이번 개정은 2015년 최초로 항생제 내성 전략을 채택한 이후에도 항생제 내성이 빠르게 악화하고 있다는 판단에서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종과 국경을 넘나들며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항생제 내성

 

항생제 내성이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국제 보건의 심각한 위협으로 커진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새로운 항생제 개발이 정체되어 있다는 점이다. 1980년대 후반 이후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새로운 계열의 항생제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항생제는 대개 짧은 기간 사용되는 약이고, 내성을 늦추기 위해 사용을 제한해야 하는 특성도 있어 제약기업 입장에서는 투자 매력이 낮다. 시장이 외면하는 사이 내성균은 계속 진화해 왔다.

Timeline of the discovery of different antibiotic classes in clinical use
출처 : ReAct Group. Timeline of the discovery of different antibiotic classes in clinical use (© ReAct Group, 2015), adapted from Silver LL. Challenges of Antibacterial Discovery. Clinical Microbiology Reviews. 2011;24(1):71–109.
 

또한 항생제 내성은 종과 국경을 넘나든다. 가축에 쓰이는 항생제, 농작물에 쓰이는 살균제, 폐수와 하천에 남아 있는 약물은 내성 유전자가 생기거나 퍼지는 환경이 될 수 있다. 한 나라에서 항생제 오남용으로 생겨난 내성균은 여행, 무역, 식품 유통, 환경 이동 등을 통해 다른 지역으로 퍼질 수 있다. 

이런 항생제 내성에 가장 취약한 대상은 신생아다. 글로벌 항생제 연구개발 파트너십(GARDP)에 따르면 매년 세계에서 약 214,000명의 신생아가 항생제 내성 감염으로 목숨을 잃는다. 면역 체계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신생아에게 패혈증은 치명적이고, 기존 1차 항생제가 듣지 않는 순간 대안 치료가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재단, 우선순위에 대응하는 연구 개발 지원

이러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세계보건기구(WHO)는 2024년 「세균 우선순위 병원체 목록(BPPL, Bacterial Priority Pathogens List)」을 7년 만에 갱신했다. WHO는 항생제 내성으로 공중보건에 중대한 위협이 되는 병원체를 위급(Critical), 높음(High), 중간(Medium)의 세 단계로 분류하고, 신약 개발과 진단, 감염 예방, 감시체계 강화가 시급한 영역을 제시했다.

List of WHO BPPs of public health importance, 2024 update 
Source: WHO Bacterial Priority Pathogens List, 2024 
 

가장 시급한 최우선 위협(Critical group)의 주요 병원체로는 카바페넴 내성 Acinetobacter baumannii,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목, 3세대 세팔로스포린 내성 장내세균목 등이 포함됐다. 특히 장내세균목에는 신생아 패혈증의 주요 원인균으로 꼽히는 Klebsiella pneumoniae, E. coli 등이 포함된다. 중저소득국 신생아 패혈증에서 이 같은 그람음성균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고, 항생제 내성 확산은 매년 발생하는 신생아 사망과 깊이 맞닿아 있다. 고위험군(High group)에는 임균(Neisseria gonorrhoeae)과 장티푸스균 등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기존 핵심 치료제에 대한 내성이 확산되며 치료 선택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병원체들이다.

라이트재단은 WHO BPPL의 우선순위에 직접 응답하는 두 건의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첫 번째는 ‘신생아 패혈증 내성 완화를 위한 항생제 병용요법 개발’이다. 재단은 비영리단체 글로벌 항생제 연구개발 파트너십(GARDP)과 제일약품이 함께하는  이 과제에 총 40억 원을 지원한다.

이 과제는 기존에 허가받은 세 가지 항생제(플로목세프, 포스포마이신, 아미카신)의 새로운 조합을 찾아내고, 안전성 및 효능을 평가하기 위해 혁신적 접근 방식을 사용한다. 이 병용요법의 대상은 BPPL 최우선 위협(Critical group)에 포함된 장내세균목 내성균이다. 제일약품이 보유한 플로목세프 원료의약품 원천기술을 기반으로 제조 공정 개발과 제조 역량 강화를 목표로 한다. 최종적으로는 WHO 사전적격성심사(PQ) 인증과 국가별 직접 등록을 거쳐 전 세계 신생아에게 공급할 예정이다.

두 번째는 클라미디아·임균·항생제 내성 임균을 한 번에 검출하는 현장 분자진단 기술 개발이다. 라이트재단은 SD바이오센서와 함께 분자진단 플랫폼 STANDARD™ M10을 활용해, 세 가지 표적을 단 한 번의 검사로 동시에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과제를 지원하고 있다.

SD바이오센서 분자진단 플랫폼 STANDARD™ M10
 

임균은 WHO BPPL에서 고위험군에 포함된 대표적인 내성 병원체다. 임질 치료에 사용돼 온 주요 항생제에 대한 내성이 확산되면서, 환자에게 어떤 항생제가 효과적인지 빠르게 확인하는 일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이 과제의 핵심은 진단을 의료 현장으로 더 가까이 가져오는 데 있다. 클라미디아 감염, 임균 감염, 항생제 내성 여부를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다면 환자는 더 빠르게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고, 의료진은 항생제를 보다 신중하게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