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30일
<세계일보> 게재
1월 30일은 세계소외열대질환(Neglected tropical diseases∙NTD)의 날이다. 소외열대질환은 매년 전 세계적으로 10억 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아직도 관심과 투자는 부족하다. 세계소외열대질환의 날은 이 질병들의 심각성을 일깨우는 동시에 지금까지 일궈낸 성과를 널리 알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실천을 독려하고자 만들어졌다.
소외열대질환이란 명칭 탓에 이 분야가 한국과는 다소 멀게 보일 수 있지만, 한국은 소외열대질환을 치료하고 예방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제 개발을 이끄는 리더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세계소외열대질환의 날을 맞아 국제 보건에서 한국이 해낼 수 있는 역할을 다시금 돌아보고자 한다.
소외열대질환은 열대 지방에서 주로 발병하는 질병들을 일컫는 말로, 리슈만편모충증, 회선사상충증, 진균종, 수면병 등 WHO가 공식적으로 지정한 소외열대질환은 현재까지 21가지이다.
이 중 일부 질환은 매우 치명적인데, 감염 후 수년 동안 특별한 증상이 없다가 갑자기 심장부전을 유발하는 샤가스병이 대표적이다. 리슈만편모충증과 같은 질환은 얼굴에 흉터를 남겨, 환자들의 사회적 낙인과 소외를 유발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기후 변화로 인해 뎅기열 같은 소외열대질환이 지구 곳곳으로 퍼지는 양상도 나타난다.
소외열대질환의 가장 큰 공통점은 가장 빈곤한 커뮤니티에 영향을 미치고, 빈곤의 악순환을 지속시킨다는 것이다. 비말이라는 인도의 한 환자는 HIV와 내장리슈만편모충증을 동시에 앓았다. 이 때문에 그는 일할 수 없었고, 그의 가족은 궁핍에 시달렸다. 결국 14살의 아들이 학교를 그만두고 일자리를 찾아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처럼 소외열대질환 치료제는 소외 계층에게 가장 필요하지만, 바로 이런 이유로 환자들의 접근성이 떨어진다. 일부 질환들은 아예 치료제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상업적 인센티브가 부족한 탓에 제약업계가 치료제 개발에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
한국의 경험과 역량은 소외열대질환을 둘러싼 이런 문제들을 개선하는 데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많은 한국인이 수십 년 전 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말라리아, 결핵, 기생충 질환 등 여러 감염성 및 기생충 질환을 보거나 겪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한국은 이런 질환들을 퇴치하는 데 성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제약 산업과 연구의 눈부신 발전을 이뤄냈다. 이제는 소외열대질환에 대한 치료제를 개발을 이끄는 데까지 나아갔다.
한국에서 현재 이런 역할을 수행하는 대표적인 곳이 ‘국제보건기술연구기금(RIGHT Foundation; 라이트재단)’이다. 2018년 한국 정부와 민간의 공동 출자로 설립된 이 재단은 결핵, 말라리아 및 여러 소외열대질환에 대한 치료제 및 진단기기와 백신 개발 연구를 지원하며, 이런 연구 결과물을 필수 의료 공공재로 개발해 이 기술이 필요한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보급하는 것이 목표이다.